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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워싱턴 리뷰어

무엇이 옳고, 그른지 답변을 찾기 어려운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같은 그리스도인이지만, 어떠한 문제를 놓고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수도 있다. 이러한 어려운 난제 앞에서 우리는 계속 시행착오를 해가면서, 꾸준히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 다운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성화되어 가는 모습과도 흡사하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러한 문제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것인지 평생 연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1. 세상 경영의 원리: 정의와 사랑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고 난 후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래 계획이었다. 즉,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는 것이 아닌, 인간에게 일을 맡기신 것이다. 하나님은 로봇처럼 프로그램한대로 움직이는 인간이 아닌, 자율적인 인격을 가지고 그 분과 소통하며 관계 맺길 원하셨다. 선악과는 인간이 하나님을 거절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격적인 존재로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율적 인격체는 조물주인 하나님마저 부인할 수 있는 결정권을 주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모험이었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이렇게 일그러진 세상에서 다시 하나님이 만드신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복음의 의미를 깨달은 우리들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삶을 통해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복음의 의미를 깨닫게 해야한다. 이 때 하나님의 다스림의 원리를 깊이 깨닫는 것이 우리들에게 중요하다. 그 다스림의 원리는 정의와 사랑이며, 그 결정체가 예수 그리스도이다. 정의와 사랑의 조화는 언제나 어렵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결코 용서가 없으시며, 그 값은 죽음이라는 것을 물으신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다스림의 속성이 하나님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을 희생하며 우리를 사랑하시고, 공의를 이루셨다.



2. 정의와 사랑으로 살아가기


시편9:8-12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하나님이 다스림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믿는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단순하게 선과 악이 구별되어 있지 않다. 때로는 하나님이 부재하신 듯 인간의 죄악은 뻗어나가고 있다. 이럴 때 하나님의 다스림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개인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어떠한 문제가 정치적, 사회적인 경우에는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한 예로 남북통일에 대한 관점이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적, 혹은 공동체적 정의를 인간의 관점에서 해결하려고 한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절대적 기준의 선이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절대적 진리가 아닌 차선책으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고, 이 때 사용되는 것이 상대적 정의라는 틀안에서 문제의 해결을 하려고 한다. 이러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어디 갔는지 불평하기 보다, 남들보다 더 성실하게 일하며, 공의로운 세상이 세워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여기에 관해서는 우리의 마음과 눈,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노력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일 것이다.



3. 세상 경영의 방법: 노동


성경에서의 노동은 이윤 창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타락된 이 세상에서 노동을 바라볼 때는 수고스럽고, 고통스러운 것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이러한 수고에도 불구하고 늘 좋은 결과만 따르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땅에서 노동이라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넓혀 나간다. 이러한 수고스러운 노동을 하나님의 임재와 연결한 사람들이 많다. 로렌스 형제는 노동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더 깊이 체험한 사람이다. 평범한 수도사로 살았던 그이지만, 그의 삶, 즉 노동 가운데에서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극대화시켰다. 즉, 노동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노동은 진한 예배를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삶의 대부분은 일을 하는데 쓰여진다. 그렇다면 그 일의 최종 목표를 돈으로 설정할 것인가? 아니면 예배로 승화시킬 것인가는 우리가 어떻게 노동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4. 노동하며 살아가기


"하나님의 다스림이 이제 나타날 것입니다. 공의와 사랑의 다스림이 완전하게 나타날 것인데, 우리는 그 다스림을 아직 온전히 드러나지 않은 현재의 세상에 가져와서 그것을 믿고 그 관점으로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 살아갑니다" - 김형국 목사


빌립보서2:13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것을 염원하게 하시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두 청소부가 있다. 한 사람은 쓰레기 치우면서 더러운 것을 만지는 것을 언제까지 해야하나 한탄한다. 반면 다른 사람은 하나님이 만드신 지구의 한 구석을 책임지고 깨끗하게 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극단적인 예화이지만, 삶의 자세 그리고 그 중심이 하나님께 있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고 있다. 결과를 보았을 때는 동일할 수 있는 노동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시는 관점은 극과 극이다.


이러한 노동 가운데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바로 성실함과 탁월함이다.골로새서3:22-23 "종으로 있는 이 여러분, 모든 일에 육신의 주인에게 복종하십시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주님을 두려워하면서 성실한 마음으로 하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이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이 진심으로 하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에 성실하게 일하는구나 라고 생각이 들게 된다면, 참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이보다 더 높은 수준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를 부르셔서 그 일을 맡기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일에 탁월함을 넣어야 한다. 최고의 진한 예배로 우리는 일에 임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못본다고 해도, 그 분이 우리에게 맡기셨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우리의 노동은 남들과의 노동을 비교하기 보다, 작은 것 하나라도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며 탁월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며, 찬양하며 예배하는 삶복음을 전할 수 있는 축복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은혜" 찬양 중에서




이 포스팅은 김형국 목사의 풍성한 삶의 기초 (비아토르)의 책과 이수용 목사의 일대일 제자 양육을 참조하였음을 알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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